대한민국 힙합신을 대표하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떠올리면 ‘최자‘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에도 이런 단짝 친구들이 정말 많다.

‘그때 넌 무슨 느낌이 들었어?’

적당히 친했던 그 사람이 물었다. 나는 ‘글쎄…’라고 잠시 머뭇댄 후 ‘모른다’라고 답변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 주제는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해당 질문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글쎄’와 ‘모른다’의 관계

‘글쎄’와 ‘모른다’는 단짝 친구다. 다이나믹 듀오의 랩 가사처럼 ‘불알 두 짝처럼 붙어 다니는 관계’다. 대답하기 껄끄러울 때나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곁들이면, 리얼 예능에서 자주 나오던 그 ‘마법의 가루‘와 같은 효과를 준다.

‘모른다’라는 답변은 질문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나는 어떤 계기를 시작으로 최근 사회, 경제에 관한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일어난 사건, 사고 자체에 대한 질문에서는 ‘정말 모르기 때문’에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건 감정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다.

당신의 감정은 안녕하십니까?

‘오늘 어땠어?’, ‘기분이 좀 그래?’, ‘오늘 좋아보이네?’

감정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명확하게 설명 가능하다. 하지만 뭔가 잔잔해서 대답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이럴 때면 ‘글쎄… 모르겠어’라는 콤비를 소환하곤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다. 회피하고 싶어서. 특히 부정적 감정이 들었을 때 이런 반응을 자주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는 ‘구체적으로 쪼개서 감정의 원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였다.

삶의 맥락은 디테일과 시간이 쌓이면서 형성된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라고 생각하는 게 정말인지 착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해보는 것으로 쉽게 판가름할 수 있다. 명확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개념과 ‘모른다’라는 대답의 맥이 닿아있다.

사실 내 순간적인 감정 상태는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긍정적,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몰라도 생기는 불편함은 별로 없다. 일상은 그런 감정과 상관없이 잘도 흘러가니까. 하지만 강에 모래톱이 생겨 물길의 형태가 결정되듯이 우리 인생에는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감정을 ‘왜’라는 돋보기로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를 구성하는 감정의 이유가 쌓여갈수록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라던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조금씩 덜 하면서 살 수 있어서다. 자아를 알아가는 시간과 방황의 시간은 반비례 관계를 가진다.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착각, 그래서…

그렇지만 검색, 소셜 미디어, 챗 GPT 등에 생각을 위임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편집해 놓은 생각을 숨 쉬듯 흡수하는 환경에 사는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다. 오히려 인터넷 세상의 빅브라더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정부들이 부모님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에서 좋은 질문을 할 줄 아는 친구가 필요하다. 감정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모른다’라고 대답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질문한 본인도 그렇게 대답하는 상황이 많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명확한 답변을 기대하고 질문했을 확률도 낮다. 답변한 사람이 ‘왜’ 모르는지에 대해 깊게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추궁하는 것 같아서. 서로 불편해지기 싫어서.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다행이다. 쌓은 덕도 없이 과분한 사람을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감사의 말을 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