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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 2023년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을 보고 깨달은 점

영화 ‘노량’에 대한 소감 영화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전작인 <한산: 용의 출현>이 더 재미있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무게감은 좋았다. 그리고 조선, 명나라, 일본의 병사들이 서로 뒤얽혀서 싸우는 모습을 원테이크로 촬영한 모습은…

영화 ‘노량’에 대한 소감

영화는 그렇게 재미있지 않았다. 전작인 <한산: 용의 출현>이 더 재미있었다.

배우들의 연기와 무게감은 좋았다. 그리고 조선, 명나라, 일본의 병사들이 서로 뒤얽혀서 싸우는 모습을 원테이크로 촬영한 모습은 대단했다. 엄청 고생했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전투의 마지막 부분에서의 표현은 아쉬움이 있었다.

물론 나라의 성웅인 이순신 장군김윤석 배우의 죽음을 어떻게 표현해야 할지 고민이 많았겠지. 아마 최선의 선택이었을 수도 있었겠지만, 개인적으로 느끼는 영화의 재미 측면 기준으로는 아쉬웠다.

그래도 해상 대전의 웅장함, 치열함을 큰 스크린으로 볼 수 있는 기회가 있다는 건 고마운 일임에 틀림없다.

‘노량: 죽음의 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대단하다고 여겨진 부분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생각하는 이순신 장군의 대단함을 굳이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나는 그중에서도 영화를 보면서 배우고 싶은 성품이 있었다. 그건 ‘남 탓에 매몰되지 않고 해야 할 다음일을 냉철하게 해내는 능력’이었다.

역사적 사실을 영화로 만든 것이기에 스포일러가 있기 어렵다. 하지만 그마저도 싫은 독자라면 이후 내용은 읽지 않길 바란다.

노량 해전의 계기가 되는 건, 명나라 장군인 진린정재영 배우의 두 가지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 이미 끝난 전쟁이다. 이순신 고집대로 전투를 하고 싶지 않다. 더 이상 피해보고 싶지 않다.
  • 빨리 고향으로 돌아가 내 공로를 황제에게 인정받고 싶다.

이런 이유로 진린은 일본 측에서 바친 뇌물을 못 이기는 척 받았다. 그리고 배 한 척을 포위망 밖으로 보내주었다. 그 배는 일본 시마즈 요시히로백윤식 배우에게 가서 출정을 설득한다. 그렇게 전투가 시작된다.

진린이 받은 뇌물을 발견하고 분노한 이순신 장군은 조명연합군의 해체를 선언하며 단독전투를 명령한다. 그리고 이순신 장군은 신속히 전투를 끝내야 하는 상황에서 아주 빠르고 정확하게 전략을 세운다.

얼마나 열이 받았을까. 후퇴하는 적을 때려잡아 다시는 조선을 넘보지 못하게 만들고 싶었던 이순신 장군이었다. 당연히 아군의 피해가 예상되는 일이었다. 하지만 이순신 장군은 후세를 위한 그림까지 그리고 있었다. 그래서 명나라 진린 장군이 보았을 땐 쓸데없는 고집이라고 여기는 주장을 계속하고 있었던 것이다.

나라면 진린이 괘씸하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아무것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냉철하게 다음 수를 밟아가는 모습이 내게는 확 다가오는 부분이었다. 중요한 순간에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제대로 판단하는 삶을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나이를 먹으면서 조금씩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음을 느낀다. 영화에서 본 순간을 놓치지 않고 자꾸 그려본다면 닮아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하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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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패는 임시적이다. 포기는 영원하다.

“실패는 임시적이다. 포기는 영구적이다.” 로버트 기요사키 실패는 공기와 같은 존재다. 어떤 일을 하던지 성공과 함께 짝을 이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포기는 실패 경험과 그로 인해 생기는 좌절의 과정을 거친 결과다….

“실패는 임시적이다. 포기는 영구적이다.”

로버트 기요사키

실패는 공기와 같은 존재다. 어떤 일을 하던지 성공과 함께 짝을 이뤄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포기는 실패 경험과 그로 인해 생기는 좌절의 과정을 거친 결과다. 문제는 포기는 우리가 자발적으로 선택한 결과라는 것이다.

당신의 성공과 실패의 기준은 무엇인가?

성공과 실패는 자신이 세운 기준으로 규정된다. 즉, 어떤 관점으로 내가 하는 일의 기준을 세우느냐가 중요하다.

물론 포기하는 이유는 다양하다. 목표의 부재, 자신감과 자존심 하락, 기회비용 상실에 대한 두려움 등등. 하지만 내 경우 가장 큰 요인은 다른 것이었다.

과거에 나는 포기를 밥먹듯이 했다. 실패에 대한 맷집이 약한 편이었다. 한 두대 때려 맞으면 바로 포기 상태가 되었다. 포기는 습관이 된다. 더 이상해봤자 무의미하다는 절망 끝에 포기는 웃으며 날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내가 세운 성공과 실패를 규정짓는 기준은 ‘승패’였다. 승리하지 못하면 자신감과 자존심이 무너지는 상태. 왜 그렇게 승리에 집착했었는지 몰랐었다.

하지만 최근 강점 테스트로 깨닫게 되었다. ‘자신의 목표를 달성했다 하더라도 남과의 비교에서 졌다고 생각하면 실패했다고 규정하는 성향’이 반영된 결과였다.

승리와 패배는 상대적 비교로 완성된다.

승패는 경쟁 상대와의 비교로 결정된다. 다들 알겠지만 비교라는 감정에는 끝이란 게 없다. 한 명을 제끼면, 더 잘하는 사람이 표적에 들어온다. 나는 시작할 때 목표를 크게 잡는 편이었다. 그러니 실패 확률이 올라갈 수밖에 없었다. 목표를 작게 잡는 건 왠지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었으니까.

요즘은 승패에 연연하지 않으려는 자세를 가지려고 노력 중이다. 정말 좋아서 하는 일이라면 남과의 승패가 중요하지 않다. 내 수준의 향상 자체가 너무 즐거운 일이 되니까.

승패에 연연하지 않으면 생기는 일

물론 승패에 연연하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포기하지 않는다는 건 아니다. 레벨 정체기는 분명히 오기 때문이다. 수준 향상은 계단식으로 점프하는 패턴을 보인다. 수준이 높아질수록 정체시기가 길어질 수밖에 없는 구조를 가진다. 그래서 그 정체기를 이기지 못해 포기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최소한 타인과의 비교로 성공과 실패를 결정하는 것보다는 더 오랫동안 그 일을 할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그러니 수준이 더 이상 오르지 않는 순간이 왔을 때 포기를 결정해도 늦지 않다.

“태수야. 살아보니께, 강한 놈이 오래가는 게 아니라 오~래 가는 놈이 강한 거더라”

영화 <짝패> 대사 중

말맛나는 명대사가 많은 류승완 감독의 영화 <짝패>의 대사가 가슴에 박히는 오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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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옷을 입고 노란 자전거를 탄 소녀

신호가 없는 아파트 입구 횡단보도를 건넜다. 빨간 자전거 도로가 포개진 도보가 나타났다. 상념에 잠긴 채 행인이 걷는 라인을 따라 조금 더 걸었다. 이상한 감각이 들어 문득 보니 맞은편에는 노란 옷을…

신호가 없는 아파트 입구 횡단보도를 건넜다. 빨간 자전거 도로가 포개진 도보가 나타났다. 상념에 잠긴 채 행인이 걷는 라인을 따라 조금 더 걸었다. 이상한 감각이 들어 문득 보니 맞은편에는 노란 옷을 입고 노란 자전거를 탄 소녀가 다가오고 있었다.

살짝씩 비틀거리며 느릿한 속도로 오는 자전거 옆에는 한 아주머니가 소녀 방향으로 몸을 돌린 채 종종걸음으로 따라오고 있었다. 아주머니는 양팔을 크게 벌리고 있었다.

소녀는 다운증후군정확히는 모르지만을 겪고 있는 것 같았다. 어머니인지, 할머니인지 가늠되지 않지만 아주머니는 소녀가 넘어져 다칠까 노심초사하는 것이었다. 당연히 혹시 모를 사고로 행인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고.

두 사람이 내 옆을 지나쳐갔고, 나는 정면을 주시하며 계속 걸었다. 자전거가 횡단보도 초입에 다가갔을 타이밍이 되었을 때. 자전거보다 몇 걸음 뒤쳐져 걸어오던 짙은 남색 정장을 입은 노신사가 빠르게 뛰어가기 시작했다. 나와 동일선상을 지나 칠 때즈음 노신사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 어 조심조심. 내가 잡을께”

갑자기 울컥하는 마음이 들어 눈시울이 붉어졌다. 평소에 어떤 마음으로 소녀를 보호하며 살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분들 인생의 무게를 감히 넘겨짚을 수는 없겠지만, 부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으로 느끼는 동질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거기에는 미처 내가 이해할 수 없는 안쓰러움이 더욱 깊게 서려 있겠지.

이기적인 생각일 수 있겠지만, 건강한 아이를 두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감사함을 느꼈다. 그리고 더 최선을 다하는 부모가 되자는 다짐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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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무에 걸린 동물에겐 기회가 없다

내 젊은 시절의 인생은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 ‘왜 그런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고민을 자주 한다. 남은 40~50년 인생 물론 주어진다면 을 ‘후회’라는 색으로 칠하고 싶지는…

내 젊은 시절의 인생은 편견과 오만으로 가득한 시간이었다. 40대 중반이 된 지금 ‘왜 그런 삶을 살았는지’에 대해 고민을 자주 한다. 남은 40~50년 인생 물론 주어진다면 을 ‘후회’라는 색으로 칠하고 싶지는 않으니까.

‘진지한’ 삶의 태도를 지향했던 과거의 나는 물론 지금도 지향점에는 다름이 없다. ‘내면이 단단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꿈을 꾸면서 살았다. 그렇지만 내면을 단단히 하기 위해 해 왔던 생각의 결에 문제가 있었다. 수동적인 생각을 하면서 진지한 삶의 태도를 지향했던 것이다.

수동적 생각의 심보

수동적인 생각은 ‘스스로 선택하지 않는다’는 수순을 밟는다. 선택을 하지 않으니 타인의 생각이나 행동에 휘둘리며 살아간다. 당연히 자기 생각의 결과를 남에게 전가하며 책임지지 않으려 한다. 어쩔 수 없이 책임을 지더라도 눈을 질끈 감으며 입 안으로 털어 넣는 쓴 가루약처럼 억지로,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곤 한다. 다만, 혜택은 최대로 받고 싶어 한다.

그렇게 나는 인내 없이 열매만 따먹고 싶어 하는 심보에 기인한 ‘가난한 마음’을 가지며 살았다.

생각은 향기를 남기고

돌이켜보면 ‘능동적인 생각’을 하면서 진지한 삶의 태도를 지향했어야 했다. 그랬다면, 과거의 내게 잔소리하는… 이런 글을 쓸 필요도 없었겠지.

올해가 되어서 깨닫게 된 게 하나 있다. 삶의 태도에 수동적 향을 더하느냐, 능동적 향을 더하느냐는 ‘내 생각의 씨앗을 누구의 텃밭에 심느냐’에 따라 달라진다는 사실이다. 이 사실을 알게된 다음부터 내 스탠스가 조금씩 바뀌기 시작했다. 뜬금없이 텃밭이라니. 무슨 말인지 어리둥절하는 사람이 있을 것 같다.

사람은 ‘생각의 씨앗’을 심어 키우는 농부다

생각의 씨앗은 사건, 사고, 현상 등의 경험을 계기로 뿌려진다. 그리고 자란다.

싫어하는 정파에 속한 정치인의 비리나 길거리에서 예고 없이 훅 들어오는 담배연기 등의 경험을 하면, 그때 느껴지는 감정이 생각으로 이어진다.

‘정치하는 놈들이 다 그렇지’, ‘거참 매너 없이 자기만 아는 사람이네’

이런식으로 원인을 제공한 사람에게 생각이란 씨앗을 돌멩이에 묶어 던지면서 살아왔다.

그렇게 가시 돋힌 생각으로 당장의 스트레스를 털어버릴 수 있었다. 속이 조금 시원해지는 느낌이 괜찮았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말았어야 했다. 그 당시에 생각을 무기로 쓰지 않고 씨앗으로 내게 심었더라면 어땠을까. 최대한 애지중지하면서 키우지 않았을까?

애정을 주면 생각의 씨앗은 긍정적, 능동적 행동이란 결실을 맺는다. 내 삶의 태도에 긍정적이며 능동적인 향을 입힐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기회를 기회라고 생각조차 못한채 시간만 낭비하며 살아왔다.

내 텃밭에 생각의 씨앗을 심으면

불쾌한 경험이 나를 들여다볼 수 있는 기회였다는 사실을 그때 알았다면, ‘나는 윤리적으로 옳음을 추구하니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정치인을 비난하지 않았을 것이다. 대신 더 나은 내가 되기 위해 노력했겠지. 또한 ‘나는 건강한 사람이어야 하니까’라는 생각을 하면서 담배 피우는 사람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대신 운동을 하려고 애썼을 것이다. 더 현명했더라면 남에게 집중하느라 시간, 에너지 낭비를 하지 않았을 것이다.

같은 현상일지라도 사람에 따라 다른 생각이 심어져 다른 행동, 다른 결과를 부른다.

내 생각의 씨앗이 타인의 텃밭에 심어지면, 과연 그 사람이 내 생각을 잘 키워줄까? 잡초 취급만 받는다. 본인이 심은 씨앗이 아니라서 그렇다. 어차피 남의 생각과 행동은 내가 컨트롤할 수 없다. 변화를 강제할 수도 없다. 오히려 그 사람은 반발심에 내가 싫어하는 짓을 더 심하게 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내 씨앗이 안쓰러워 본인의 마음만 타들어간다. 사람은 생각을 심는 농부이기 때문이다.

처음부터 생각의 씨앗을 내 마음의 텃밭에 심었어야 한다. 한번 뿌려진 생각은 생명력이 강하다. 생각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순간에도 뇌는 무의식 영역에서 생각을 무럭무럭 키운다.

오해는 말자. 내 탓을 하면서 살자는 게 아니니까. 내가 하게 되는 생각, 감정의 근원을 들여다보고 원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이야기다.

‘편견’이라는 이름의 올무

동의 없이 남의 텃밭에 일방적으로 씨앗을 던져놓고 ‘제대로 키우지 않는다’며 부정적인 편견을 가질 필요는 없다. 남에게 편견을 갖는다는 건 더 넓은 세상으로 나아갈 자신에게 눈가리개를 씌우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다.

지난 십여 년간 도움도 안 되는 편견 때문에 얼마나 많은 기회를 놓쳤는지 모른다. 중요한 결정을 앞두고 편견으로 세운 기준을 고집해 왔다. 돌이켜보면 참 쓸데없는 고집이었다. 그래서 지금은 되도록이면 잊지 않으려고 한다. 생각의 크기와 성질은 그에 맞게 행동을 제한한다는 사실을.

남에게 편견을 씌운 순간부터 나도 그것을 기준 삼아 살아가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인 그런 모순적인 삶을 살고 싶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원리로 작동하는 편견을 남에게 씌우면 씌울수록 올무가 되어 나를 결박하고 옥죄어 왔다.

이게 과거의 내게 꼭 해주고 싶었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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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른다’라는 거짓말

대한민국 힙합신을 대표하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떠올리면 ‘최자‘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에도 이런 단짝 친구들이 정말 많다. ‘그때 넌 무슨 느낌이 들었어?’ 적당히 친했던 그 사람이 물었다. 나는…

대한민국 힙합신을 대표하는 다이나믹 듀오의 ‘개코‘를 떠올리면 ‘최자‘가 자동으로 떠오른다. 우리가 습관적으로 사용하는 말에도 이런 단짝 친구들이 정말 많다.

‘그때 넌 무슨 느낌이 들었어?’

적당히 친했던 그 사람이 물었다. 나는 ‘글쎄…’라고 잠시 머뭇댄 후 ‘모른다’라고 답변을 마무리했다. 그렇게 우리의 대화 주제는 다른 곳으로 흘러갔다. 그리고 해당 질문으로는 다시 돌아오지 못했다.

‘글쎄’와 ‘모른다’의 관계

‘글쎄’와 ‘모른다’는 단짝 친구다. 다이나믹 듀오의 랩 가사처럼 ‘불알 두 짝처럼 붙어 다니는 관계’다. 대답하기 껄끄러울 때나 별로 생각하고 싶지 않을 때 곁들이면, 리얼 예능에서 자주 나오던 그 ‘마법의 가루‘와 같은 효과를 준다.

‘모른다’라는 답변은 질문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가진다. 나는 어떤 계기를 시작으로 최근 사회, 경제에 관한 뉴스를 거의 보지 않는다. 그래서 실제 일어난 사건, 사고 자체에 대한 질문에서는 ‘정말 모르기 때문’에 사용한다. 그렇지만 이건 오늘 이야기하고 싶은 주제는 아니다. 내가 주목하는 건 감정에 대한 질문을 받았을 때다.

당신의 감정은 안녕하십니까?

‘오늘 어땠어?’, ‘기분이 좀 그래?’, ‘오늘 좋아보이네?’

감정에 대한 답변을 해야 하는 질문을 받을 때가 종종 있다. 대부분은 명확하게 설명 가능하다. 하지만 뭔가 잔잔해서 대답하기 어려울 때도 많다. 이럴 때면 ‘글쎄… 모르겠어’라는 콤비를 소환하곤 했다.

곰곰이 생각해 보면 이유는 두 가지다. 첫째는 질문에 대해 생각하고 싶지 않아서다. 회피하고 싶어서. 특히 부정적 감정이 들었을 때 이런 반응을 자주 보였던 것 같다. 그리고 나머지는 ‘구체적으로 쪼개서 감정의 원인을 생각해 본 적’이 없어서였다.

삶의 맥락은 디테일과 시간이 쌓이면서 형성된다

‘내가 무언가를 안다’라고 생각하는 게 정말인지 착각인지 헷갈릴 때가 있다. 그건 다른 사람에게 내 생각을 말해보는 것으로 쉽게 판가름할 수 있다. 명확한 표현으로 설명할 수 없다면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개념과 ‘모른다’라는 대답의 맥이 닿아있다.

사실 내 순간적인 감정 상태는 인생에 큰 영향을 주지 못한다. 긍정적, 부정적으로 느껴지는 이유를 몰라도 생기는 불편함은 별로 없다. 일상은 그런 감정과 상관없이 잘도 흘러가니까. 하지만 강에 모래톱이 생겨 물길의 형태가 결정되듯이 우리 인생에는 시나브로 모르는 사이에 조금씩 조금씩 영향을 준다.

그래서 감정을 ‘왜’라는 돋보기로 심층적으로 들여다보는 과정은 꼭 필요하다. 나이를 먹을수록 그런 시간이 더욱 필요하다고 느낀다. 나를 구성하는 감정의 이유가 쌓여갈수록 ‘내가 정말 좋아하고, 하고 싶어 하는 일’이 뭔지라던가, ‘내가 누구인가’라는 질문을 조금씩 덜 하면서 살 수 있어서다. 자아를 알아가는 시간과 방황의 시간은 반비례 관계를 가진다.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착각, 그래서…

그렇지만 검색, 소셜 미디어, 챗 GPT 등에 생각을 위임하는 생활이 일상이 되어버린 요즘이다. 출처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편집해 놓은 생각을 숨 쉬듯 흡수하는 환경에 사는 우리는 자신의 감정을 잘 모른다. 오히려 인터넷 세상의 빅브라더빅데이터 플랫폼 기업, 정부들이 부모님보다 나를 잘 이해하고 있을 것이다. 그렇게 우리는 두루뭉술하고 모호한 상태로 살아간다.

그래서 인생에서 좋은 질문을 할 줄 아는 친구가 필요하다. 감정을 묻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모른다’라고 대답해도 그러려니 하고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질문한 본인도 그렇게 대답하는 상황이 많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명확한 답변을 기대하고 질문했을 확률도 낮다. 답변한 사람이 ‘왜’ 모르는지에 대해 깊게 들어가려고 하지 않는다. 추궁하는 것 같아서. 서로 불편해지기 싫어서.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다행이다. 쌓은 덕도 없이 과분한 사람을 곁에 두고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 이 글을 쓰면서 감사의 말을 전한다.

‘모른다’라는 거짓말에 댓글 없음

‘나는 왜 이게 안될까’라고 자책하고 있는 나에게

안녕? 20대의 나, 그리고 30대의 나. 그래 나 자신들. 오늘도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몇 년 전 오늘 기록은 당연히 없으니까 어떤 감정으로 그 험한 세상 살아가고 있는지 잘…

안녕? 20대의 나, 그리고 30대의 나. 그래 나 자신들. 오늘도 무탈하게 잘 지내고 있는지 궁금하다. 몇 년 전 오늘 기록은 당연히 없으니까 어떤 감정으로 그 험한 세상 살아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근데 아마 힘들게 살고 있겠지. 안 봐도 비디오다야.

그래서 문득 너희 모두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생각나서 열심히 타이핑하고 있는 중이다. 집중력이 언제 끊길지 모르겠지만 최대한 써보려고.

원래 손톱이 긴 날은 맥프레 15 애플맥북프로 15인치 키보드를 두드리는 느낌이 별로라서 타이핑을 하지 않는 게 지금 내 원칙인데, 할 말이 생각났을 때 써두지 않으면 하얗게 백지로 남을까 봐 마음에 안 들어도 참고 꾸역꾸역 치고 있는 중이야. 너네가 40대 중반이 돼봐라. 그런 것도 기억 못 하냐고 비웃을지 모르겠지만, 방금 밥 먹고 뒤돌아서면 ‘내가 오늘 점심 뭐 먹었지?’라고 미간을 찌푸리면서 생각을 짜내야 하는 게 내 나이더라. 너네도 몇 년 안 남았어, 정신 똑바로 차려. 술도 좀 줄이고.

사실 내가 지난 주말에 멘탈이 나가버렸거든? 좀 많이 힘들었어. 너네들은 매일이 힘들다고? 알아. 아니까 지금 글을 쓰고 있는 거잖아. 조금만 기다려봐, 곧 본론 나오니까. 그리고 어른 말씀 중간에 끊어먹는 거 아니다 이놈들아 ㅋㅋㅋ

… … … 봐봐라, 벌써 무슨 말을 하려고 했는지 생각이 안나잖아_-;;

멘탈 붕괴 회복력이 빨라졌더라고

응. 그래. 생각났다. 지난 주말에 멘탈이 좀 심하게 나가버렸지. 자신감이 바닥을 쳤거든. 그래서 2~3일 정도 하루종일 무기력해 빠져 있었던 거야. ‘내가 이 정도밖에 안 되나’싶어서 자존심도 많이 뭉개졌지. 얼굴 푸석하고, 피부색도 칙칙하고, 하루종일 잠만 오는 그런 상태였어. 아내님은 ‘무슨 일이냐’면서 걱정하고. 아! 나는 지금 결혼했으니까 결혼 못할까 봐 걱정은 하지 마라. 마음 착하고 예쁜 아내님 만나서 지금까지는 잘 살고 있으니까. 네 마음을 스스로 눌러 죽이면서 살지 마. 그런 게 쌓이면 진짜 그렇게 사는 거더라.

그렇게 한 가정의 가장이 면목없이 아내님에게 걱정을 끼쳤지. 그래도 지금은 말짱하게 회복했어. 너희 때였으면 최소 2주에서 한 달까지 저 깊은 바닷속으로 딥다이빙 했을 텐데, 4일 만에 멘탈 잡았으니까 엄청 빠르게 잡은 거야. 어떻게 이렇게 빠르게 돌아올 수 있었을까. 그래, 너희들은 믿기지 않겠지. ‘내가 그렇게 된다고?’라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을 거야. 이해해. 지금의 너희는 딱 고만큼만 볼 수 있는 시야각을 가지고 있을 수밖에 없으니까.

처음엔 ‘이게 되네?’ 싶었다. 나도 모르게 체화된 방법이 있었던 모양이야. 자전거 탈 때 일일이 과정을 생각하면서 타지 않잖아. 그런 거랑 비슷해. 그냥 그런가보다 하면서 넘어가려고 했는데, 멘탈 회복 방법을 나 자신들에게 이야기 해줘야 겠더라고. 그래서 글을 쓰기 시작하니까 머릿속에서 그 과정이 떠오르다 정리가 되더라. 멘탈이 무너진 사람이 어떤 상황이어야 다시 추스르기 시작할 수 있을지에 대해 말이야. 너희들에게 방법을 가르쳐줘야 하니까 조금 명확하게 단계가 정리되네. 땡큐.

심연으로 딥다이브 중이라고?

멘탈이 나가서 속상함의 바닷속으로 빠져 가라앉고 있다면 이렇게 해봐.

먼저 한 숨을 푹 하고 쉬어. 숨을 내 쉴 때 ‘푹~’하면서 길게 숨을 뱉지 말고, ‘푹!’ 하면서 짧게 내뱉듯이 쉬어. 복싱에서 쨉을 날리듯이. 연타로 몰아치는 상대방 공격을 쨉 한 번 날려서 흐름을 끊는거야. 그런식으로 해저로 떨어지는 마음이 잠깐 멈추더라고. 그러면서 물속에 잠깐 떠 있는 느낌이 들어. 당연히 모든 사람이 그렇게 느끼진 않겠지. 나 자신이니까. 느낌 아니까 하는 말이야. 그러니까 뭔가 껄쩍찌근하더라도 해보더라고.

그다음엔 ‘쓰읍~’하면서 길게 숨을 들이마셔, 그리고 ‘후~’하면서 길게 내뱉어. 이걸 세 번 반복해. 그럼 마음이 이전보다 확실히 고요해져. 아, 그런데 세 번 이상은 하지 마. 평소 안 하던 호흡이라 머릿속이 아찔아찔 해지더라. 짜르르르한 그 느낌, 알지? 머릿속에 산소가 다 빠져나간 듯한 그 느낌. 그래, 그거. 여하튼 그렇게 ‘몸이 탄식의 바닷속에서 살짝 수면 쪽으로 떠오르는 느낌이 든다…’라고 생각하면서 세 번 심호흡해 보라는 말이야.

이렇게만 해도 탄식, 상념에 빠져드는 멘탈을 잠깐 진정시킬 수 있어. 이거 아주 중요한 거다. 가슴 뛰는 RPM이 잡혀야 침착하게 나아질 방법을 생각할 수 있는 거니까, 꼭 기억해. 엔진이 부릉대는 스포츠카에서 전기차 정도의 실내 조용함을 만들어야 차분히 개선 방법을 생각해 볼 수 있다는 이야기야.

… 하, 쓰다 보니 엄청 길어지네. 귀찮은데 그냥 나중에 쓸까…

정줄 잡은 다음엔 이렇게 해

이다음엔 이거야. 너를 멘탈 붕괴까지 가게 만든 사건을 똑바로 마주 보는 거지. 그리고 그 사건에서 떠올렸던 생각들을 복기해 보자는 거야. 우리들 성격이라면, 아마 대부분 이런 생각을 했을걸. ‘하아,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한 건데… 나는 왜 안될까?’라고. 남과 비교를 하든, 나와 비교를 하든지 간에 이 생각 자체가 문제더라고. 세균인셈이지. 이런 생각이 쌓이면서 멘탈을 조금씩 갉아먹다가 ‘스스로 아련해지는 병’에 걸려버리는 거야.

그럼 어떻게 해야 이런 생각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 여기서 너희와 나와의 짬밥이 갈리는 거란다, 얼라들아 ㅋㅋㅋ

방법은 간단해. 너희들 강점을 알고 있으면 된다. 아, 심플하다. 끝. 아직도 내가 잘하는 게 뭔지, 하고 싶은 게 뭔지 몰라서 오춘기네, 육춘기네, 칠춘기네 하면서 방황하는데 그런 건 어떻게 아느냐고 항변하고 싶겠지? 그래 맞아. 그래서 나도 최근 그걸 후회하고 있던 참이야. ‘왜 더 빨리 내 강점을 알아보려고 노력하지 않았을까’라면서.

그래, 그래. 오해하지 마. 너희들이 그걸 찾으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는 알아. 생각도 많이 하고, 책도 읽어보고 그랬잖아. 근데 아쉽지만 그게 잘못이었다는 거야. 혼자, 스스로 해결해 보려고 노력해다는 거. 아이러니하지. 이번 건은 전문가를 찾아갔어야 했더라고. 마흔 살 넘어서 알게 된 내가 한탄스러울 정도로 허망한 이야기더라고.

난 내가 스스로 나를 찾을 수 있을 줄 알았지. 근데 한계가 있더라. 가정환경 때문일수도 있고, 나란 사람의 본성적 나 약함 때문일수도 있고, 대한민국 교육 족구 하라고 그래! 때문일 수도 있겠지. 그래도 그동안 고민한 만큼 생각 두께는 두꺼워졌을 거야. 그거 나름대로 나중에는 도움이 되는 거니까 너무 억울해하지는 말자고.

맞아, 너희들 나이대에 전문가를 찾아볼까라는 생각을 안 해본 건 아니었지. 그런데 그런 여유가 없었지. 정보도, 시간도, 돈도, 마음의 여유가 없었으니까. 하지만 요즘은 세상이 좋아졌더라. 하긴 AI가 일상에 쓰이는 시대니까. 그런 게 있어. 머신러닝이라는 게. 다음카페에서 활동하면서 정보 얻고, 블로그만 해도 쓸데없는 일한다고 여겨지던 시대에 살고 있는 너희니까 뭔 소린가 싶을 거야.

여하튼, 요즘은 그런 강점 조사를 하는데 돈이 별로 안 들어. 적당히 디테일한 검사가 최소 3만 원 정도에서 많으면 10만 원 정도니까. 그 정도만 투자해도 내 강점을 확실하게 알 수 있어 좋더라고. 너무 잘 맞아서 점쟁이인 줄 알았다.

그렇게 강점을 알게 되니까 ‘나는 왜 이게 안될까’라는 자책의 저주에서 벗어나기가 너무 쉬워지더라고. 대부분 내 멘털을 망가뜨리는 일이나 생각들은 내게 약점인 것들을 해내려고 할 때 생기더라는 거지. 알잖아, 우리 기질. 뭔가 꼬라지가 생기면서 잘 안 되는 걸 해내보고 싶다는 그런 기질. 극복해버리겠다는 기질. 근데 안 되는 건 안되더라. 되는 건 잘 되고. 살아보니까 굳이 잘 못하는 약점을 극복하려고 안 해도 되더라고. 진짜 크리티컬 한 건 약점을 부여잡아야겠지만, 또 그런 건 대부분 투자 개념으로 돈을 넣으면 누군가 해주더라. 물론 그 돈 투자하려고 결정하는 게 어려운 일이긴 하지만. 최소한 판단할 지식은 있어야 하니까. 뭐, 그렇더라는 거지.

내 강점은 이렇더라

그러니까 이제부터 우리가 강점으로 가지고 있는 부분을 이야기해 줄게. 원래는 그만 쓰려고 하다가 나중에 너희들 약점 극복 못했다고 쓸데없이 심연의 바다로 딥다이브 하지 말라고 쓰는거니까 잘 들어.

우선 우리들은 아이디어를 잘 떠올려. 그리고 그걸 즐겨해. 재미있어 보이는 일이 생각나면 그 산업의 끝단까지 상상하곤 해. 그래서 실행력은 약한 거야. 진짜 재미있는 순간은 상상으로 이미 끝났으니까 다음은 사그라드는 것만 남았잖아. 그러니까 ‘생각만 많고 게을러서 난 안될 거야’ 따위 생각은 버려. 그거 남들의 통념으로 너를 찌르는 일밖에 안돼. 일을 세팅하는 것까지는 재미를 느끼잖아? 세팅까지만 하고 안정적으로 일을 반복 실행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위임해. 아님 협업을 하던지.

두 번째, 우리는 행동하는 것을 좋아해. 그런데 문제는 한 번 결정하고 난 건 어떻게든 빨리 해보고 싶어서 안달이 난다는 거야. 그 덕에 현재의 나도 주말이 껴서 애들을 아내님과 함께 봐야 하는 날이 쉽지 않다는 거야. 응, 그래. 놀랍겠지만 애들도 있어. 딱 우리 닮은 딸이랑 반씩 섞어 닮은 아들 ㅋㅋㅋ
사랑스러운 애들을 보는데도 마음 불편한 건 어쩔 수 없다는 이야기야. 빨리 빨리 일을 해야 하는데 못하는 상황을 잘 못 견디는 거지. 그러니까 괜히 ‘나는 왜 이렇게 조급해하지? 좀 침착해야 제대로 하는데’라고 고민하지 마. 원래 네가 그런 사람인 거니까. 그리고 이것도 해보고 싶고, 저것도 해보고 싶은 것도 너한테는 당연한 거니까 고민하지 마. 아이디어 잘 떠올리고, 빨리 해보고 싶어 하는 사람이니까 그러는 게 당연해.

세 번째는 우리는 되게 심사숙고하는 스타일이라는 거야. 평소에 너무 조심스럽고 심약하다고 생각해서 스트레스였지? 과감하지 못해서 뒤쳐지는 거라고 생각하고 말이야. 다 일장일단이 있는 거야. 나 부동산 투자 할 때엔 큰 도움이 된 강점이니까 잘 활용해 봐. 리스크 시뮬레이션을 잘해서 도움이 되는 경우도 많더라. 우리 회사도 그 성격 덕에 프로젝트 잘 돼서 성장했던 거야. 물론 또 요즘엔 그것 때문에 잘 안되기도 하지만. 무기가 되는 칼을 잘 사용하는 게 중요하지 칼이 중요한 게 아니더라.

네 번째는 승부욕이 많은 성격. 그래서인가… 항상 남들보다 뒤처지는 것 같은 생각을 하는 거야. 세상에는 나보다 잘난 사람들이 엄청 많으니까. 그래서 자존심이 높은데 성과가 받쳐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면서 또 실망하면서 사는 거야. 이건 좀 컨트롤을 잘해야겠더라. 물론 지금의 나도 잘 조절이 안돼. 그래서 목표를 세우지 않으면서 살아왔던 것 같아. 그건 좀 후회된다.

마지막으로는 지적인 탐구를 하는 걸 좋아해. 지금도 다행이라고 생각한 건 26살 때부터 책을 읽기 시작했다는 거야. 나는 그때 내가 큰 의지를 발휘해서 읽은 거라고 생각했는데, 아쉽게도 아니었어. 그러니까 20대의 나 자신, 우쭐대지 마라 ㅋㅋㅋ 책을 많이 읽어서 성과가 있었냐고? 있는 건 있고, 없던 건 없었지. 그래도 최소한 지금 너희들한테 귀에 때려 박는 잔소리를 할 생각정도는 하면서 살 수 있게 됐으니까 의미는 있던 거겠지.

아까는 귀찮았는데 생각나는 대로 쓰다 보니까 술술 써지고 그러네. 그래도 다행이다. 글 쓰는 걸 싫어하는 건 아닌 사람이라서. 여하튼 애들 쓴다. 나도 열심히 살 테니까, 너희들 너무 자책들 하면서 살지 마. 자책을 해도 알면서 하자는 거야. 강점인걸 못했을 때 자책하면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멘탈이 와르르 무너지거나 그러진 않잖아. 열심히 살려고 하는 자세를 가진 건 내가 제일 잘 알고 있어. 근데 세상 사는 건 좋은 의도만으로 되는 건 아니니까. 어렴풋이 느끼고 있지? 그래. 또 생각나면 편지 쓸게. 욕봐라. 잘 지내고. 진짜 끝.

‘나는 왜 이게 안될까’라고 자책하고 있는 나에게에 댓글 없음

훈수꾼에게 운전대를 맡긴 건 너의 선택이었다.

오늘도 ‘하~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과거의 나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려고 한다. 잘 들어, 30대 나 자신. 넌 성공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 여기저기를 한참 기웃거리고 있을…

오늘도 ‘하~ 어떻게 해야 성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고 있을 과거의 나에게 한 가지 조언을 해주려고 한다. 잘 들어, 30대 나 자신.

넌 성공하는 방법을 찾고 싶어서 여기저기를 한참 기웃거리고 있을 거야. 성공 사례도 찾아보고, 서점에도 가보고. 그렇지만, 네가 뭔가 놓치고 있는 것 같다는 느낌 같은 느낌을 버려야 돼! 그 느낌이 맞는지 안 맞는지 확인해 보려면 직접 해보는 수밖에 없으니까… 제발 시간 낭비 하고 싶지 않다는 마음으로 효율성 운운 하면서 다른 방법을 찾지 마. 그냥 해보는 게 가장 빨라. 똥인지 된장인지 바로 알 수 있다고. 다른 방법 찾는 게 오히려 네가 제일 싫어하는 시간낭비야. 넌 시간을 허공에 태워버리고 있는 중이라고.

손해보지 않으려 하는 너의 습성은 남에게 판단을 의존한다는 최악의 상황을 불러들이게 돼. 네 중심이 잡혀있지 않은 상태에서 전문가의 조언들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없어. 현재의 나는 단언할 수 있어.

넌 내 대답을 듣고 이렇게 묻고 싶을거야. ‘왜’냐고, ‘전문가는 자신들 시간을 녹여 경험을 했기 때문에 믿을 수 있는 것 아니냐’라고 말이지.

전문가를 훈수꾼으로 만드는 건 너 자신이야.

당연히 제대로 된 전문가라면 그렇겠지. 그래도 지금의 너에겐 그 사람들이 도움 안 될 거야. 생각해 봐, 너는 무슨 근거로 그 사람들의 조언을 믿을 건데? 그냥 권위가 있으니까 믿는다고? 그게 근거 없이 믿는 것과 무슨 차이가 있을까. 사람의 인생은 크게 보면 비슷비슷한데, 작게 보면 미묘하게 달라. 가진 돈, 시간, 심성, 가치관 등에서 차이가 난다고. 그런데 실제로 성공한다는 건 큰 방향성을 맞게 잡아가는 것만으로는 부족해. 운전대를 잡고 있는 당사자의 마이크로 컨트롤이 핵심라고.

그런데 운전대를 잡아야 하는 지금의 네 상태는 어때? 나만 뒤처지는 것 같아서 마음은 급해, 자기중심도 없어서 남이 뭘 해서 잘 됐다는 방법론에만 기대고 있어. ‘인생은 실전이야 존만아’라는 명언이 있다는 걸 잊지 마. 결국 넌 전문가 조언을 들어도 그 방법론이 결실을 맺을 때까지 주욱 밀고 나갈 힘 자체가 없어. 그러니까 자꾸 운전대 방향을 꺾게 되겠지. 네 마음은 더 나은 전문가를 찾을 수밖에 없는 메커니즘으로 돌아가고 있으니까.

결국 전문가를 훈수꾼으로 만드는 건 너의 자세라는 말이야. 잘 생각해야 돼. 네 인생의 의사결정을 훈수꾼에게 맡기면 어떤 일이 생길까? 그 사람들은 네 엄마, 아빠가 아니야. 그 사람들은 훈수를 둔 결과에 책임을 지지 않아. 결과에 대한 모든 리스크는 100% 플레이어의 책임이야. 바로 네 책임이란 말이야. 그래서 네 인생인 거고. 30대 정도 됐으면 이 정도 생각은 할 줄 알아야지.

그래, 억울할 수 있어. 그런데 뭐? 어쩌라고?!

그래 너도 억울할 거야. 기반이 없는 건 네 잘못이 아니라는 거겠지. 근데 그게 참… 잔인한 말 같지만 다 네 잘못이 맞아. 어쨌든 성인으로 10여 년을 살아온 거니까. 무조건 네 책임이야. 억울한 마음이 들어도 어쩔 수 없어. 세상이 네 상황 보고 짠불쌍하다고 챙겨주는 경우… 없잖아? 그 정도는 알지?

물론 이건 맞아. 훈수꾼 시야가 더 넓을 수 있다는 거. 네가 믿는 대로 시간과 경험 투자가 많이 된 사람들이잖아. 제대로 된 전문가라면 말이지. 그런데 이런 점을 고려해봐야 할 거야. 그들의 시야가 넓은 건 네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기도 하다는 것 말이야. 당연히 본인들 커리어를 성공 사례로 채워야 하기 때문에 최선을 다할 거라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야. 그 부분에서 그들 나름대로 리스크를 책임지는 거지. 그런데 지금 내가 이야기하는 건 네 인생의 결과에 대한 책임을 말하는 거야. 본인들 인생을 책임지기 때문에, 또는 직업윤리를 지키기 위해 그들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는 건 맞겠지.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이야기하곤 해. ‘이러저러하면서 결국 잘못된 선택을 하는 분들을 보면 참 안타까운 경우가 많았습니다’라고. 그런데 그건 그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잘나거나 혜안이 있어서가 아니야. 타인의 삶을 관조고요한 마음으로 사물이나 현상을 관찰하거나 비추어 봄.하는 역할을 수행하기 때문이야. 사실 삶에서 필요한 방향성과 방법 대부분은 너도 알고 있어. 확신이 없을 뿐이지. 그래서 그 확신을 훈수꾼들에게 얻으려 하는 거지.

그런데 직시해야 해. 발끝이 녹아버릴 것 같이 뜨거운 용암 구덩이 앞에 서 있는 건 너라고. 타인은 저 먼발치에서 시원한 수박을 먹으면서 조언을 할 뿐이야. 조언은 어떤 건 유효하고, 어떤 건 쓸모없을 거야. 어차피 50:50 확률이라고. 그 확률을 높이는 건 강단 있는 네 중심이라고. 네가 확신을 가지고 점프를 하면 용암 구덩이를 뛰어넘을 거야. 그런데 뛰기 전부터 ‘이게 맞나?’하면서 고개를 갸우뚱하고 있으면… 점프하는 순간 식은땀이 흘러내리면서 심장이 떨어지는 느낌이 들 거야. 그러고는 속으로 읊겠지. 뭐꼬추 됐다고.

기본기가 있는 사람은…

기본기가 있는 사람은 훈수꾼의 조언을 참고해. 그리고 판단은 자신이 하지. 그에 대한 책임도 기꺼이 지고. 하지만 기본기가 없는 너 같은 사람은 훈수꾼의 조언을 따라. 그리고 판단은 위임하지. 그에 대한 책임은 울며 겨자 먹기 식으로 지지. 억울해하면서 호소할 거야. ‘전문가라고 했잖아요~!’. 그러면서 판단의 책임에서 자신을 쏙 빼는 거야. 유체이탈적 사고를 하는 거지. 웃긴 거야. 네 인생인데 네가 판단한 게 아니라고 발뺌하는 거지. 그래서 뭐 어쩔 건데. 훈수꾼이 책임지고 네 인생을 케어해 준데? 아마 더 고가의 상품을 들이밀면서 ‘이거는 정말 확실하다’ 라거나 ‘네 의지가 부족해서 그런 거니 집중 케어를 하면 분명히 될 거다’라면서 세일즈를가짜 전문가들은 팔아먹는 거지 할 거야.

어떤 바보가 그런 단계에 접어들겠냐고? 응 네가 그럴 거야 바보야. 몇 천만 원씩 강의와 솔루션을 받아서 40대의 내가 된 거니까 내 말이 너에겐 2,543%는 맞을 거야.

기본기는 직접 행동해서 그 결과를 복기하는 사람에게 쌓이는 거였더라. 복기해서 더 디벨롭할지, 보완할지, 폐기시킬지 본인이 직접 선택하는 사람에게 쌓이는 거라고. 누군가의 인생 전체의 선택을 모두 훈수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없어. 그건 부모님도 못해주는 일이야. 내가 지금 부모가 되어 보니까 더 잘 알겠더라고. 결국은 자기가 결정해야 하는 순간이 꼭 오는데, 넌 지금 그걸 유예하고 있을 뿐이야.

초조함을 컨트롤 할 줄 아는 능력

너도 알면서 주체적인 선택을 회피하고 있기 때문에 위험한 상황임을 느끼고 있을 거야. 자기 선택 없이 인생을 살아온 사람은 조금만 결을 달리 한 문제에 직면하면 어쩔 줄 몰라 크게 당황하곤 해. 기본기가 없으니까 응용이 안 되는 거더라고. 공식만 디립다(?) 외웠는데, 그 공식에 문제를 적용해 봤는데 답이 안 나오는 거야. 그런 거랑 같은 상황이라는 거야.

자기 기준을 가지고 주체적으로 사는 사람하고 남한테 의존하면서 사는 사람은 어떤 부분에서 차이가 시작됐는지 알아? 초조함을 컨트롤하는 능력에서 시작된 거야. 누구나 빨리 성과를 내길 바라고, 성공하고 싶어 하지. 그런데 잘 된 사람은 그 초조함을 컨트롤하고 직접 행동에 옮기더라고. 그러니까 그 사람들 행동에는 이유why가 분명해. 또 그러니까 중간에 너처럼 마음을 잘 꺾지 않지. 왜 이걸 해야 하는지 분명히 아니까. 그래서 목적지에 도착하는 거야.

비트코인으로 인생이 바뀌었다더라, 틱톡으로 대박 났다더라, 퍼널마케팅으로 자동으로 돈이 들어오는 구조를 만들었더라 등등. 솔깃하지? 맞아. 40대인 내가 지금 들어도 군침이 줄줄 흘러. 참 쉬워 보이니까. 노력 없이 할 수 있을 것 같으니까. ‘나라고 그렇게 되지 말란 법 있어?’라는 생각이 마구 들겠지. 그러면서 그런 ‘~카더라’ 이야기를 한 사람을 전문가로 모시는 길로 빠져. 잘 생각해 봐, 이 모든 과정에서 네 기준으로 선택한 게 있어? 그냥 낙엽이 강물에 떠서 흘러가듯이 그냥 그냥 간 거야. 자기 인생인데 남일 대하듯 하는 거야. 눈에 두건을 두르고 용암 구덩이 앞에서 점프하려고 하는 거야. 구덩이 넓이가 얼마가 되는지도 모른 체.

웃기지? 아직도 막 네 이야기가 아닌 것 같고 그러지? 아니야, 이거 다 네 이야기야. 지금처럼 막연하게 살면 앞으로 10년간, 40대에 접어들 때까지 갈대처럼 왔다리 갔다리 하는 인생을 살 거야. 그리고 오늘의 나처럼 너도 분노의 타이핑을 하고 있겠지. ‘멍청아! 제발 그러지 마, 안된다고’ 이러면서. 참… 부끄럽고 짠하다. 너도 잘 살아보려고 그런 거니까.

다 알아, 네 상황. 다 아니까 이번에는 좀 다르게 선택하고 살아보자. 알았지?

훈수꾼에게 운전대를 맡긴 건 너의 선택이었다.에 댓글 없음

성공하기 위해 굳이 남의 가치관을 따라할 필요가 없는 이유

성공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자기 계발 책을 보면 이런 주장이 자주 나오곤 한다. “성공한 사람의 글을 100번 필사하고, 성공한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이런 건물을 갖고 싶니?

성공에 대해 다루고 있는 자기 계발 책을 보면 이런 주장이 자주 나오곤 한다.

“성공한 사람의 글을 100번 필사하고, 성공한 사람의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하면 당신도 성공할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주장이 모두에게 적용되는 건 아니다’는 주제로 생각을 정리한다. 즉, 성공하기 위해 굳이 남의 가치관 을 따라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언제적 ‘시크릿’이냐?

요즘 ‘당연히’라는 단어에 꽂혀 있다. 시크릿, 끌어당김의 법칙 같은 이론은 자기개발계에서 빠짐 없이 나오는 주제 중 하나다.

나는 그 이론에 대한 책을 읽어본 적은 없다. 그냥 알음알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이미 이뤘다고 믿는 정체성을 가지면 실제로 그렇게 된다는 정도로만 알고 있다.

그렇지만 신선한 주장을 접하게 된 계기가 있다. 최근 히어로 모먼트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면서 알게 된 분 중 투리브 작가님을 알게 되었다. 우연찮게 알고리즘 덕분에 접하게 된 분인데, 이분이 출간한 전자책을 읽다가 영감을 매우 많이 받은 포인트가 있었다. 그게 ‘당연히’ 이론이다.

‘당연히’라는 가치관 단어가 주는 힘

시크릿 믿고 행동으로 옮기는 사람 중 일부는 성취하고 싶은 미래상을 계속 되뇌며 산다고 한다. 그런데 투리브 님은 그래서는 안된다고 말한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저자의 주장은 이렇다.

이미 성취하고 싶은 자신의 모습은 미래에 이미 완성되어 있으니, 현재의 나는 당연히 그에 걸맞은 행동을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해야 한다는 것이다. ‘당연히’, ‘뻔뻔하게’, ‘몰입’해서.

45년 만에 깨닫게 된 내 가치관

내 가치관을 알면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나만의 속도로 달릴 수 있다. 굳이 남과 경쟁할 필요는 없잖아?

오늘 아침은 ‘이제 확실히 가을이 왔구나’를 느낄 수 있는 날씨였다. 맑은 하늘과 뛸 때마다 느껴지는 딱 좋은 선선한 바람에 매우 기분이 좋았다. 평소와 다름없이 달리는 호흡에 맞춰 내가 되고 싶은 미래상의 정체성을 중얼거리며 뛰는 중이었다.

그러다 문득 ‘당연히’라는 단어가 생각 속으로 훅 흘러 들어왔다. 본인에게 완성된 미래 모습이 너무나 당연하면 의도적으로 떠올릴 필요조차도 없다는 책 내용이 생각난 것. 그래서 자기 암시를 멈추었다.

간헐적 단식 중에 먹은 ‘뻥이요’, 그리고 ‘쫄병스낵 매운맛’

그런데 사람의 뇌라는 게 참 신기방기 하다. 생각을 하게끔 설계된 자연의 섭리 또는 본능 덕분일까? 자기 암시를 멈춘 생각 공백을 참지 못하고, 어제 퇴근 운전길에 먹었던 과자 두 봉지가 갑자기 생각났다.

‘건강해지겠다고 간헐적 단식하는 사람이 뻥이요랑 쫄병스낵 매운맛을 먹었다니…’

이율 배반적인 나

부끄러운 일이지만 고백하자면, 2년 연속 검사받았던 종합검진에서 빨간불 경고를 받았다. 고혈압, 당뇨, 동맥경화 등등. ‘한 번 더 같은 결과를 받으면 이거 정말 위험하겠구나’ 싶어 시작한 간헐적 단식이다. 그렇다고 100% 빡빡한 스케줄로 하는 건 아니다. 70% 정도의 성실함으로 하는 중인데.

왜냐하면 100% 강도로 진행 하겠다고 마음먹었어도 안 지킬게 뻔했다. 내 인생의 빅데이터를 분석하면 그런 답이 나온다. 항상 반복하는 전형적인 작심삼일, 용두사미 스타일 인생을 살아왔다.

그래서 어제 과자파티를 열었어도 자책감이 거의 없었다. 게다가 오늘은 평소보다 더 많이 뛰고 있는 중이라 조금 남은 자책마저 훨훨 태워버리는 중이었고. 당연히 어제 일을 반성하는 의미로 더 뛴 건 아니다. 단지 뛰어가고 싶은 코스가 평소보다 더 길었던 것뿐.

‘당연히’가 모든 걸 완성하는 마지막 키(key)였다!

이런 상황에 ‘당연히’라는 단어가 생각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그리고는 깨달았다. 트랜스포머의 로봇이 변신하듯 작은 생각의 부품이 ‘착착착착 팍팍팍팍’ 하며 빠르게 조립되기 시작했다.

성공하는 방법에 대해 주장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자기중심’, ‘자기만의 기준’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당연히 맞는 말이다. 나는 그런 사람들이 대단해 보였다. 그들은 자기만의 확고한 가치관을 가지고 말을 하는 것일 테니까. 물론 일부는 입으로만 나불대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런 건 제외하고…

‘그런데 나는 나이 먹고 왜 이모양일까. 나는 내가 뭘 좋아하는지도, 어떤 가치를 추구하는 지도 잘 모르겠어. 이제는 그런 책을 하도 많이 읽어서… 내 가치관을 떠올려봤을 때 이게 진짜 내가 원하는 건지, 아니면 그들의 생각을 내 것이라 착각하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어’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그런데 오늘 러닝 하다 진짜 내 가치관을 알게 된 것이다. 너무 쉬운 방법이었는데 지금까지 그걸 몰랐다니…

겨우 알게 된 내 가치관은…

내 가치관은 ‘지금까지 내가 했던 결정과 행동들을 돌아보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내가 어제 과자 파티를 하게 된 이유, 평소 돈을 많이 벌길 원하지만 소파에 드러누워 유튜브를 보는 이유, 책은 읽지만 기록으로 잘 남기지 않는 이유, 성공한 사람의 글을 필사하다가 결국 포기하는 이유, 롤모델의 루틴을 따라 하다가 흐지부지하게 되는 이유 등을 잘 생각해보면 알 수 있었던 것이다.

50km로만 달려도 충분하겠는데?!

‘아~ 나는 느슨한 노력으로 잘 되고 싶어 하는 가치관을 가진 사람이구나’

‘그건 너님이 그냥 게으른 거야’라고 평가해도 할 말은 없다. 피상적으로 봤을 때 그렇게 생각할 수 있는 것도 당연하니까. 내 가치관을 몰랐던 과거의 나도 스스로를 ‘게으른 놈’이라고 생각했으니까 당연하다.

하지만 이 글의 요점은 그게 아니다. 남이 나를 어떻게 평가하든 말든, 중요한 건 내 가치관을 발견하는 방법을 찾았다는 것입니다.

현재의 내 모습은 과거의 수많은 행동들이 쌓이고 쌓인 결과다. 그 속에는 굵직한 행동도 있고, 자잘 자잘한 행동도 있다. 그렇다면 어떤 행동이 인생에서 중요할까? 당연히 다 중요하다. 하지만 간과할 수 없는 건, 자잘한 행동 패턴대로 중요 행동을 선택했을 확률이 높았을거란 사실이다.

물고기가 물에서 호흡하는 걸 깨닫지 못하듯

자잘한 일상적인 습관성 행동은 뇌가 생각하자마자 거의 동시에 일어난다. 숨 쉬듯 너무나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다. 이렇기 때문에 나를 분석해 보려는 생각 자체를 하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물고기가 물속에서 아가미로 숨을 쉬듯, 무지성으로 자연호흡하듯이 살아왔던 것이다.

그 결과 이미 좋든 싫든 단단한 가치관을 가지고 있던 나인데, 계속 밖에서 찾으려고 했다. 많은 돈, 시간, 에너지를 써가면서.

정말 성공의 길을 먼저 간 사람을 그대로 따라가는 게 맞을까?

성공학을 전파하는 사람들 중에는 성공 방정식을 배우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사람들도 그런 심리로 책, 강연 등을 접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정말로 ‘성공한 사람의 글을 필사하고, 행동을 따라 하며 부자의 비법을 배우면’ 우리도 성공할 수 있을까? 나도 그게 맞다고 생각해 왔다. 글을 필사하면서 부자의 생각을 각인시키고, 행동을 따라 하면서 습관도 각인시킨다는 전략은 합리적으로 보인다. 그래서 나도 바뀔 수 있다고 믿었다.

그렇지만 오늘 러닝 하면서 깨달은 후로는 생각이 바뀌었다. 누구는 성공한 사람의 가치관대로 바뀔 수 있겠지만, 모두가 바뀔 수는 없다는 것을. 그리고 모든 사람이 한 방법으로만 성공하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더 강해졌다.

사람의 본성이 그리 쉽게 바뀌던가요?

사람의 본성은 쉽게 바뀌지 않는다. 정말 바꾸기 어렵다. 특히 자기 가치관으로 쌓인 시간과 경험 누적량이 많은 성인의 경우는 더더욱 그렇다.

여기서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가치관을 바꾸려고 애쓸 것인가, 바꾸지 않고 내게 맞는 방법을 찾으려 애쓸 것인가’로 말이다. 즉 멋진 옷에 내 몸을 맞출 것인가, 내 몸에 맞는 멋진 옷을 찾을 것인가란 말과 같다.

나는 후자를 선택하려고 한다. 누군가는 가치관을 바꾸는 게 가능할 수도 있지만, 나는 그렇지 않을 것 같으니까.

‘ㅇㅇ를 바꿔야 성공한다’는 책들은 그 특성상 일반론에 가까울 수밖에 없다. 책을 읽는 사람의 가치관이 동일하다 하더라도 나이, 성별, 지역, 직업, 사회 환경에 따라 획일적으로 적용할 수는 없다. 결국 취사선택을 해야 한다. 그것은 결국 책 내용을 자기 입맛대로 바꿔간다는 뜻이다. 자연히 내 가치관이라는 기둥은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을 하는 것과 같은 구조로 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성공한 사람의 1:1 밀착 코칭을 받지 않는 상황에서라면 말이지.

큰 그림을 보자

‘당연히’ 모두 한 방향으로만 달릴 필요는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성공에 이르는 길은 당연히 단 한 가지는 아닐 것내가 성공해본 게 아니니 잘 모른다, 단지 유추해 볼 뿐이다. 공통된 특성이 있을 수는 있지만 똑같진 않다. 그래서 ‘나처럼 느슨한 노력으로 성공하고 싶었는데 목표를 이룬 사람’을 찾아보려고 한다. 분명히 있을 것이다.

이건 일을 잘하는 사람이나 공부를 잘하는 사람들의 유형을 봐도 충분히 유추할 수 있는 결론이다. 누구는 집요하게 파고들고 누구는 설렁설렁 노는 것 같지만, 결과가 나오는 포인트를 잘 짚어서 질적으로 승부를 보는 사람도 있다.

만약 내 생각에 동의한다 하더라도, 자기 스타일에 맞게 유연하게 방법을 찾아보기 바란다. 단, 이것 하나만은 꼭 해보길.

Todos

  1. 당신의 지난 선택과 행동을 되짚어보고, 그것은 어떤 가치관에 근거해서 하게 된 것들인지 살펴보는 게 시작이다.
  2. 그렇게 현재 본인 마음속에 존재하는 가치관을 들여다 보자.
  3. 그 후엔 자기 스타일에 따라 기둥까지 뜯어고칠지, 기둥은 그대로 두고 리모델링을 할지 결정하자.

성공하기 위해 굳이 남의 가치관을 따라할 필요가 없는 이유에 댓글 없음

언제나 겸손하고 매너있게 살아야 하는 이유

그는 우리 회사의 직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파트너사의 대표로 함께 하게 되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위급한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만약 예전에 관계가 비뚤어지게 만들어졌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큰 난관을…

그는 우리 회사의 직원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파트너사의 대표로 함께 하게 되었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면, 위급한 우리를 도와준 고마운 사람이 되었다.

만약 예전에 관계가 비뚤어지게 만들어졌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큰 난관을 마주하게 되었을까?

일이 조금 잘 풀린다고 해서 우쭐해할 필요 없다. 그리고 반대로 상황이 어렵다고 해서 마냥 손 놓고 바닥에 주저앉아 있을 필요도 없다.

사람의 평가는 어려운 상황에서 제대로 드러난다. 자존심 따윈 다 버리고 필사의 도움을 구해야 하는 상황일 때 대인관계의 성적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나의 성적표는 높을까, 낮을까… 그런 생각을 하게 된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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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그램 팔로우 1만 명 만드는 방법

그런 방법은 나도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팔로우 1만 명 만드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로 내가 해본 적 없으니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제부터 실제로 내가 해보려고 확언하는 의미에서…

그런 방법은 나도 잘 모른다.

정확히 말하자면, 인스타그램 팔로우 1만 명 만드는 방법에 대한 교육을 받았지만 실제로 내가 해본 적 없으니 모른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이제부터 실제로 내가 해보려고 확언하는 의미에서 이 글을 쓴다.

나는 히어로 모먼트라는 명언 관련 인스타그램 계정을 운영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글 올리기 시작한 게 10주 전쯤이다. 지금까지는 좀 헐렁하게 운영을 했다. 하지만 앞으로 빡세게 운영해 볼 생각이다.

인스타그램 히어로 모먼트 계정 프로필 피드

왜냐하면, 목표를 세웠기 때문이다.

“2023년 11월 30일까지 진성 팔로우 반응률 25%대 1만 명을 모은다.”

당연히 이루어져야 할 미래의 내 모습

이런 목표를 세운 이유는 ‘이 정도는 되어야 내 자존감이 올라갈 수 있으니까’다. 나는 콘텐츠 메이킹에 자신감이 넘친다. 하지만 자존심이 몹시 상한 상태다. 가시적으로 보이는 성과가 없어서 그렇다. 왜 그런지는 안다. 게을러터져서다. 그런데 콘텐츠 비즈니스는 크리티컬 한 퀄리티의 콘텐츠 생산능력이 없는 한은 꾸준함이 생명이다.

이런 성과가 없으니 내 자존감은 바닥에 붙어있는 상황이다. 비 온 날 아스팔트에 착 붙어 있는 낙엽처럼. 그래서 이번에는 제대로 시도해보려고 한다.

원하는 미래를 맞이하기 위해 2가지 전술을 수립하고, 오늘 밤부터 실행에 옮긴다.

  1. 1일 1포스팅 (무조건 절대 지킨다)
  2.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관계를 쌓아가는 과정으로 삼는다.

이렇게 글로 쓰고 나니 속이 후련한 느낌이다. 가슴도 살짝 설렌다. 왠지 300% 달성해 버릴 것 같은 흥분감 때문에.

인스타그램 팔로우 1만 명 만드는 방법에 댓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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