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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업, 그리고 투자에 관한 이야기

[태그:] 월요일

한 번뿐인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박종윤 님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릴스를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자신감, 자존심, 자존감을 구분해주는 내용이었는데 굉장한 영감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결국 자기 중심, 가치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자존감을 찾는다는게 굉장한 사치라는 것을…

심플한 디자인에 임팩트 있는 제목에 끌렸다.

박종윤 님의 인스타그램 라이브 릴스를 보고 느낀 점이 많았다.

자신감, 자존심, 자존감을 구분해주는 내용이었는데 굉장한 영감을 받는 시간이 되었다.

결국 자기 중심, 가치관이 없는 상태에서는 자존감을 찾는다는게 굉장한 사치라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그런중에 송현아 송도 현대 아울렛 교보문고에서 이 책 한 번뿐인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박찬위 에세이) 이 눈에 들어왔다.

내용은 아직 읽기 전이라 잘 모르겠다. 하지만 왠지 에세이적 글쓰기에 대해 배울 점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적인 느낌이 확 꽂혀서 구매했다.

앞으로 헤이디스웨이 블로그를 방치하지
않고, 간단하게라도 에세이적 글로 채우고 싶다는 생각이 들게 한 책이다.

한 번뿐인 인생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에 댓글 없음

나는 점점 단단해지는 중이다.

어제 아내님이 본인의 고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순간 뜨끔했다. “오빠, 욱하는 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보이는 행동 패턴 중 하나라더라” 악의 없는 아내님 천성이 유약한 성격을 가진… 하지만…

어제 아내님이 본인의 고민을 이야기해주었다. 그중에 이런 이야기를 했는데, 순간 뜨끔했다.

“오빠, 욱하는 건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보이는 행동 패턴 중 하나라더라”

악의 없는 아내님

천성이 유약한 성격을 가진… 하지만 욱하는 성격을 가진 나다. 이거 완벽한 내 이야긴데;; 아내님이 🔫 저격을???

그렇다. 나는 자존감이 낮은 편이다. 그래서 자존감을 높이는 것에 자연스럽게 에너지를 과용하게 된다. 이런 성격 덕분에 어떤 일을 앞두고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계속 떠오른다. 내 생각은 뇌를 놔줄 줄 모른다. 쉽게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이 조금씩 늘어난다.

전날 밤에 고민을 많이 하게 되는 일일수록 주변 사람들의 시선을 엄청 신경 쓴다. 그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괜스레 쭈뼛거리게 된다. 그러다가 회피하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하지만 올해는 다른 때와는 다른 것 같다.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 되뇌는 주문 덕분이다.

  1. 아내님과 아이들 얼굴을 생각하면서 ‘부끄럽지 않은 가장이 되자’라고 다짐한다.
  2. ‘나를 쳐다보는 사람들실제로 나는 안중에도 없다는 것을 잘 안다이 내 인생을 책임져주지 않는다. 나는 이 일을 해야만 하는 사람이다’라고 다독인다.
  3. ‘서두를 필요 없다. 하기 싫은 일이지만 꼭 해야 한다면 스텝 바이 스텝step by step을 밟자’면서 숨을 고른다.

덕분에 어찌어찌하면서 결국 하나씩 해나가고 있다. 속도를 더 내야 한다는 생각에 아쉬운 점도 있다. 하지만 과거의 나보다는 확실히 잘하고 있다.

하지만 막상 행동에 돌입하면 일을 진행하는 과정 안에서 엄청난 위축감을 느끼기도 한다. 스트레스를 스스로에게 많이 가하는 성격이라 거의 액체 상태가 돼버린다.

이런 과정을 반복하다 보면 분자구조가 변하면서 단단해질 거라 생각은 한다. 그래도 현재가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언제쯤 이런 나를 극복하게 될까? 이겨내는 사람이 되고, 나를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더 노력하고 싶다.

아내님, 따님, 아드님이 자랑스러워 할 수 있는 가장이 되고 싶다.

나는 점점 단단해지는 중이다.에 댓글 없음

내 발전 상태를 돌아보는 최고의 동기부여는?

자신이 지금까지 발전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거의 하지 않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은 삶을 돌아보고, 내 현재 상태를 체크하며, 계획을…

자신이 지금까지 발전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거의 하지 않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은 삶을 돌아보고, 내 현재 상태를 체크하며,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요한 일이지만 귀찮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발전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 거의 확실해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이 두려웠다는 게 진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저절로 나는 지난 특정 시기와 비교해서 성장했고, 성숙해졌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16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16년 전, 나는 사수 형님과 함께 단 둘이 회사를 꾸려나갔다. 우리는 아무런 기반도 없었다. 5천 원짜리 점심 먹을 돈이 없어 전전긍긍할 때였다.

그나마 형님이 나를 만나기 전에 이어왔던 인맥이 있던 게 우리 재산의 전부였다. 천만다행이지 정말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POP 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제작할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형님이 아는 분의 실크 스크린 인쇄 공장 한 구석에 작업 공간을 구해 거의 빌붙듯이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치열하게 살았다. 한정된 시간과 계속 변하는 POP 디자인 스펙에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그래도 우리는 뭔가를 하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다.

그렇게 거의 2년 정도를 지냈다. 그때 사수 형님은 물론, 공간을 빌려준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실장님과 가끔 일손이 부족할 때 도우러 왔던 사장님의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이 있었다.

긴급호출을 받고 공장에 갔다

이제는 POP 관련 일을 하지 않는다. 그 일은 형님만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하는 POP 프로젝트 일정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형님은 나를 지난주 토요일에 긴급 호출했다.

실크 인쇄를 해야 하는 물건에 문제가 생겨서 급하게 다시 CNC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실크 인쇄 사장님이 어머님 부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크 인쇄 작업을 긴급하게 해야 하는데 실장님 한 분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투입되어 일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일요일 아침, 테니스를 치고 실장님을 픽업해 공장으로 이동했다.

사실 나는 옛날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실크 인쇄 사장님은 그 후로도 가끔 뵈어서 잘 기억하고 있지만, 나머지 분들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참 신기한 게 실장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때 상황이 기억이 선명하게 났다. 처음엔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아이스 브레이킹 대화’를 나누며 이동했다.

옛날에는 실크 인쇄 공장에 자주 갔었고, 일도 많이 했었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런데 실장님이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때 행곤씨가 일을 참 잘했는데~”

엥!? 난데? 제가 행곤이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서로의 정체를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내가 좀 열심히, 치열하게 일 했었지.’ 그걸 인정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실장님에게 그때 그 사람들의 근황을 들었다.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군 제대 후 사장님 공장을 이어받는 중이라고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딸은 파티시에가 되었다고 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단 말이야?!

오늘의 미션은 물건을 픽업하고 옮기는 것

오늘 미션은 실크 스크린 인쇄 공장에 가서 우리 물건을 픽업해서 사무실로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차가 막힐 것을 고려해 일찍 출발했다. 아침 8시 20분에 도착해 9시까지 대기하다 공장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청년인데 마스크 위 눈매만 봐도 누군지 알겠더라. 사장님 아들이었다. 이때 느낀 감정이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차에 짐을 싣으면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눴다. 짐을 다 싣고 출발하기 전에 실크인쇄 사장님이 웃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우리 아들이 아까 ‘행곤이 아저씨 왔어요’라고 하던데?”

세상에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운전하는 중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건을 싣고 1시간 정도 사무실을 향해 운전했다. 운전 중에 반가운 마음으로 옛날을 추억했다. 그리고 약간의 허망함 역시 느꼈다. 그렇게 온갖 생각에 서서히 젖어들어갔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내 경제적 상태는 변한 게 없었다. 사고와 마인드는 조금 변했다. 그렇지만 13년 전에 나를 알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떻게 느낄까?

변한 것 하나 없이 오랜만에 보는 그냥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살은 엄청 쪘고, 얼굴에 세월이 느껴지는 정도의 변화를 느끼겠지. 이런 생각이 드니 괴로워졌다. 27살의 나는 성과를 내고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43세의 나는 이뤄놓은 것 없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절벽 위에 서 있는 중년이 되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아등바등하면서 커리어를 써먹으려 해보기도 하고, 재테크도 해보려고 노력 중이긴 하다.

그래도 그 성과가 언제쯤 올지 몰라서 막막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역시 나는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인 것 같다. 시간을 그냥 되는대로 흘러 보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되새기는 일을 겪었는데 또 급한 마음을 먹게 된다.

오늘의 경험을 놓지 말자.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목표를 가지고 계속해 나가자. 커리어면에서는 자존감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44세까지 월수입 3천만 원 , 재테크면에서는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48세까지 순자산 10억 성과를 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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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마인드 레터링이 가진 장점은 무엇일까?

마법같은 경험 손으로 꾹꾹 누른 후 아크릴 형틀을 떼어내자 ‘자빠와 민포, 그리고 다행’이란 문구만이 현관문에 남았다. 파란 인테리어 필름 위에 흰색 글자가 매우 잘 어울렸다. 그리스 산토리니 건물 지붕처럼. 평소엔…

마법같은 경험

손으로 꾹꾹 누른 후 아크릴 형틀을 떼어내자 ‘자빠와 민포, 그리고 다행’이란 문구만이 현관문에 남았다. 파란 인테리어 필름 위에 흰색 글자가 매우 잘 어울렸다. 그리스 산토리니 건물 지붕처럼.
평소엔 밋밋했던 일상적인 공간을 이토록 순식간에 다른 분위기로 바꿀 수 있는 게 또 있을까 싶었다. 정말 마법 같은 순간이었다. 이제야 정말 우리 가족의 현관문이 된 것만 같았다.

우리 부부 닉네임과 아기의 태명이다.

원래 ‘리마인드 레터링’은…

반신반의하면서 테스트해본 ‘리마인드 레터링’은 간판/사인 업계에서는 ‘아크릴 스카시’라고 불리는 사인물이다. 그리 새로울 것도 없는 보편적인 사인물인데, 단지 이제는 제품화를 하려고 내가 이름을 붙였을 뿐이다.
‘리마인드 레터링’을 만드는 방법은 간단하다.

  1. 아크릴 뒷면에 양면테이프를 붙인다.
  2. 디자인 시안대로 레이저 커터를 이용해 글자 모양대로 아크릴을 절단한다.
  3. 분리된 글자를 아크릴 형틀에 모양대로 끼워 맞춘다.
  4. 글자가 다시 분리되지 않도록 종이테이프를 앞면에 붙인다.

아크릴 스카시는 상업 공간의 실내용으로 자주 사용되는 사인물이다. 브랜드나 메뉴명 따위를 표시하기 위해 벽면에 붙이는 용도이다. ‘이거 하나 붙였다고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는구나’라고 평소에도 생각은 했었지만, 주거 공간에 붙여볼 생각은 하지 못했다.

발상의 전환이 된 계기

그랬던 내 생각을 확 바꾸게 된 계기가 있었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제품 아이디어를 수집하던 중이었다. 화면을 스캔하듯 인스타그램 피드를 빠르게 스크롤하는데 눈을 사로잡는 사진에 손을 멈추었다.
익숙하게 봐왔던 아크릴 스카시였는데 기존 용도와 단지 달라진 건 내 친구와 함께라는 것(미안하다, 아재다.) 카페가 아닌 거실 벽면에 붙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장소가 달라진 것뿐이었는데 멋진 인테리어 포인트 소품이 된 것이다. 이럴 수가!

‘아크릴 스카시가 홈 사인(Home Sign)이 될 수도 있겠구나. 형태와 만드는 법이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내용을 담고 어느 공간에 적용되느냐가 중요하구나!’

의지가 담긴 물건엔 사람을 끌어당기는 힘이 있다. 장인(人)의 제품이 비싼 건 그 이유 때문이다. 텍스트도 마찬가지다. 감정이 담긴 문구는 볼 때마다 곱씹게 하는 힘이 있다고 생각해왔다. 그 힘을 요즘 ‘리마인드 레터링’에서 다시 깨닫는 중이다.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드는 사용예시

리마인드 레터링을 정의하자면

‘리마인드 레터링’은 내가 만든 브랜드 이름이다. 이제 곧 상표 등록 절차를 밟을 예정이다. 상표 등록에는 적지 않은 금액이 들어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 하려는 이유는 ‘그만큼 이 제품에 마음을 빼앗겼고, 다른 사람들의 마음 역시 빼앗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리마인드 레터링’은 단지 아크릴 스카시를 콕 찝어 지칭하는 브랜드명은 아니다. 지금은 아크릴을 레이저로 가공해 만들지만, 나중엔 어떤 소재와 가공 방법을 활용하더라도 상관없다.
실체화된 텍스트가 공간을 의미 있는 분위기로 만들 수만 있으면 된다. 중요한 가치를 수시로 떠올릴 수 있도록 트리거 역할을 하는 모든 제품군을 아우르는 브랜드로 만들고 싶다.

회의실 유리 도어에도 착!

지금은 검증 받는 기간

물론 ‘리마인드 레터링’이란 브랜드를 아무 근거 없이 기대감만으로 만들지는 않았다. 나름의 검증 과정이 있었기 때문에 자신 있게 이름을 붙일 수 있었다.
가능성을 확인하기 위해 7월 1일부터 네이버 스마트 스토어에서 판매를 시작했다. 처음 스마트 스토어에 제품화해서 올렸을 땐 딱 하나만 검증받고 싶었다.

‘리마인드 레터링’을 통해 내가 느낀 마법 같은 순간을 다른 사람들도 느낄 수 있을까?

이거 단 하나였다. 결론은? ‘느낀다’였다. 그것도 꽤 확실히! 난 이 멋진 경험을 더 많은 사람들이 느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준비하고 있는 게 있는데, 이건 나중에 또 기회가 되었을 때 행복한 내용으로 이야기할 수 있으면 좋겠다. 이러다 ‘아 꿈이었어’란 주제로 이야기하는 건 아니겠지-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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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식의 흐름으로 쓰는 글

오늘은 처리해야 할 업무가 연달아 들이닥쳐서 정신 차리기 쉽지 않았다. 각기 다른 카테고리의 업무가 사이사이 껴들어 올 때의 압박감이 크다. 왠지 하나는 놓쳐 버릴 것 같은 압박감에 점점 더 예민해지는…

오늘은 처리해야 할 업무가 연달아 들이닥쳐서 정신 차리기 쉽지 않았다. 각기 다른 카테고리의 업무가 사이사이 껴들어 올 때의 압박감이 크다. 왠지 하나는 놓쳐 버릴 것 같은 압박감에 점점 더 예민해지는 하루였다. 월요일이라 더 그랬을까…?

주말 동안 감사하게도 문의해주신 리드 고객과 마켓을 통해 구매해주신 고객, 그리고 커스텀 제품을 의뢰해주신 고객까지. 고객을 응대하고 이후 프로세스를 놓치지 않기 위해 관리하는 업무가 많았다.

덕분에 사이트를 구성, 관리하고 광고 집행하는 부분은 신경을 덜 쓰게 되었다. 업무가 쌓일 때마다 요즘 드는 생각은 이렇다.

  1. 어떤 게 이 타이밍에 더 중요한지 판단이 애매모호해진다.
  2. 18시가 가까워지면 급격하게 업무추진력이 떨어지는 것 같다.

이 두 가지 생각을 한지는 오래되었다. 그러다 보니 슬슬 사람이 필요한 것 같다. 퍼포먼스 마케터를 채용해서 업무를 나누어 효율성을 높여야 할까? 그러자니 사람을 잘 뽑아야 한다.

그런데 이 업계에 들어오고 싶어 하는 괜찮은(?) 사람은 있을까? 음… 어쩌면 사람과 관계 맺기 어려워하는 내 성격이 문제일지도 모르겠다.

이러나저러나 고민이 깊어가는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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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었을 때

41년을 살다보니 남들이 한번쯤은 상상하게 된다는 순간을 하나씩 맞이해가고 있다. 진학을 하고,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입사를 하고, 창업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고… 드라마에서, 어른들의…

41년을 살다보니 남들이 한번쯤은 상상하게 된다는 순간을 하나씩 맞이해가고 있다. 진학을 하고, 대학을 가고, 군대를 가고, 입사를 하고, 창업을 하고,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고, 아이를 갖고, 아이를 낳고…

드라마에서, 어른들의 잔소리에서, 먼저 겪어본 지인들의 경험담을 접하다보니… 인생의 전환점이 될 만한 이벤트를 미리 떠올려 보는건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어쩌면 그런 길로 접어들도록 사회가 시나브로 세뇌 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다.

상상의 트리거가 되는 소스, 그들 또한 그들의 선배로부터 이야기들은대로 밟아온 인생일테니까. 그래서 역사와 전통은 무섭다. 다른 길을 선택했을때 사람을 안절부절 못하게 만드는 가장 강력한 악당이다.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었던 순간을 기억하는가? 나는 의외로 시시하거나 별 느낌을 받지 못했던 경우가 많았다. TV 드라마 속의 리액션과 지인 경험담 속의 리액션의 온도차가 나는 것은 당연하다. TV는 환상이고, 경험은 현실이니까. 그 괴리감 속에서 ‘어!?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라는 생각에 잠시 괴롭기도 했다.

2019년 3월 4일 우리 부부의 딸이 태어났다. 급작스럽게 결정된 제왕절개 수술로 갑자기 눈앞에 울면서 들어온 아기의 모습에 내 기분은 어땠을까?

어?!

나중에 우리 딸이 이 글을 보면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겠지만, ‘어?!’하는 느낌이었다. 당황과 얼떨떨 사이의 기분이었다. 이 아기가 정말 내 딸일까? 머리맡에 쓰인 아기 카드에 적힌 산모의 이름과 태명이 내가 알고 있는 정보와 같기 때문에 믿게 되는건 아닐까 하는 착각이 들기도 했다. 물론 생긴게 우리 장인어른 판박이어서 믿을 수 밖에 없었다 ㅎㅎ 외가 DNA의 완벽한 승리!

여튼 내가 이야기 하고 싶은건 막연한 상상이 현실이 되는 인생의 순간은 드라마처럼 ‘드라마틱’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내가 정상이고 그들이 비정상이다. 환상을 불어넣는 비즈니스에 속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한다는 다짐을 다시 하게 되었다.

하긴 따지고 보면 이 세상은 현혹 마케팅이 지배하고 있다. 나의 꿈과 욕망, 그리고 가치관취향을 채워줄 수 있다는 마케팅의 세상에서 현명하게 내 인생을 선택하는 기준을 생각해보는 시간을 시나브로 늘려나가야겠다.

그게 바로 우리 딸에게 인생을 가이드 해줄 아버지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

건강하게 잘 커주는게 너의 몫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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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GMA 18-250mm F3.5-6.3 DC MACRO OS HSM 캐논용

예전에 회사 업무용으로 캐논 650D를 구매했었다. 언제 샀었는지는 기억이 통 안 나는데… 여하튼 100만 원 이상 주고 샀던 것 같아. 당시에는 사용할 일이 자주 있긴 했는데, 용어도 어렵고 대충 ‘P…

예전에 회사 업무용으로 캐논 650D를 구매했었다. 언제 샀었는지는 기억이 통 안 나는데… 여하튼 100만 원 이상 주고 샀던 것 같아. 당시에는 사용할 일이 자주 있긴 했는데, 용어도 어렵고 대충 ‘P 모드’로 촬영해도 때깔? 좋게 나와서 별로 공부를 하진 않았다. 그러고 나선 몇 년간 방치.

나 같은 아마추어에겐 650D도 오버스펙이다.


100만 원 이상했던 가격이 이제 중고가로 20만 원대가 된 요즘 다시 650D를 사용하기 시작했다. 여전히 공부는 할 생각은 없었다. 근데 사람일이란 게 마음대로 되는 건 없더라. 번들로 사용하던 렌즈 대신 줌렌즈가 필요하게 되니 공부를 할 수밖에 없었다. 렌즈 가격은 둘째치고 내가 검색하고 있는 렌즈가 650D에 장착이 되는지도 모르니까 답답할 수밖에. 2박 3일은 헤맨 것 같다. 그 결과 몇 가지는 자연스럽게 알게 되더라.

  • 650D는 크롭 바디였다사실 아직도 아리까리한 부분이다.
  • 캐논 바디에는 캐논 렌즈만 써야 하는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콘솔게임처럼 서드파티 제품이 있었다.
  • 기본적으로 렌즈 이름에 모든 사양이 기록되어 있었다 펀드 이름처럼 말이지 .
  • 조리개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조리개 값 1 정도의 차이가 얼마나 나겠어’라고 생각했지만…

SIGMA 18-250mm F3.5-6.3 DC MACRO OS HSM 캐논용
시그마에서 만듦 / 줌은 18-250mm까지 / 조리개는 3.5-6.3 / DSLR 크롭바디 렌즈 / 접사가능 / 손떨림방지기능 / 초음파 오토포커스 모터 / 캐논용 이라는 뜻

이쯤 되니 역시 사람은 궁지에 몰려야 한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달았다. 그래야 발동이 걸리는 타입인 건가…

역시 새것이라 예쁘다.


원래 시그마 렌즈를 구매하려고 했던 건 아닌데… 정신 차리고 보니우여곡절이 있었지만 생략SIGMA 18-250mm F3.5-6.3 DC MACRO OS HSM 캐논용 렌즈가 내 손에 들려있었다. 구매하기 전에 블로그 후기를 엄청 찾아봤는데 별로 정보가 없어 애 좀먹었다. 내가 시그마 줌렌즈를 구매하고 느낀 점은 다음과 같다.

  1. 번들 렌즈보다 무겁다. 손이 묵직할 정도여서 무조건 두 손으로 카메라를 들어야 했다.
  2. 줌이 되는 정도는 마음에 매우 들었다.
  3. 조리개가 어두운 렌즈라 야간 촬영에 어려운 점이 있었다올바른 표현이겠지?. 최대한 밝은 포인트에서 반셔터로 초점을 잡은 후 촬영해야 흔들림이 최소화 되었다.


창 밖에 카메라를 내밀어보자.

왁?! 최대로 땡기니까 고무 다라이?가 보였다! 구멍 난 부분도 잘 보인다.

다음은 뭘 찍어볼까?

스으윽 땡겨서 한 컷. 보인다 보여~

선명히 보이는 ‘영산포 홍어 마을’ 간판. 고인다 고여~ 침이 고여.

이번엔 밖에 나가보았다. 고층빌딩에서 뭔가 이질감이 느껴졌다.

땡겨보니~ 외벽 작업하시는 분이 보인다. 수고하십니다~!!

한 분이 더 보인다.

줌을 최소로 해보니까 새삼 줌렌즈의 장점이 느껴진다. 무거워서 손목이 아찔한 건 안 비밀

이상한 점은 있었다. 왼쪽 아랫부분에 왜 검은 부분이 보이는 걸까? 후드가 찍힌 건가 싶었는데…

다시 한번 찍었다. 그래도 남아있는 검은 부분. 풀프레임 바디에 크롭 바디용 렌즈를 사용하면 이런 현상이 나온다고 하던데… 650D는 크롭 바디 아니었나? 아직 헷갈리나 막걸리나.

마음을 가다듬고 다시 찍으니까 이제 괜찮다. 나도 미니 한번 타보고 싶다. 응_-?!

아직도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전문적인 리뷰는 무리니까 글은 여기까지, 끝.

아~ 나중에 나도 멋지게 사진을 찍을 수 있었으면 좋겠어!

SIGMA 18-250mm F3.5-6.3 DC MACRO OS HSM 캐논용에 댓글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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