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지금까지 발전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거의 하지 않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은 삶을 돌아보고, 내 현재 상태를 체크하며, 계획을…
자신이 지금까지 발전하는 삶을 살고 있었는지 되돌아보는 일은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지만, 거의 하지 않게 되는 일이기도 하다.
하지만 나는 지금까지 거의 대부분은 삶을 돌아보고, 내 현재 상태를 체크하며, 계획을 세우는 일을 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중요한 일이지만 귀찮았기 때문이다. 아니 그것보다는 발전 없는 삶을 살았을 것이 거의 확실해 지난날을 회상하는 것이 두려웠다는 게 진짜 이유가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 저절로 나는 지난 특정 시기와 비교해서 성장했고, 성숙해졌나를 되돌아보게 되었다.
16년 전의 기억을 떠올리며
16년 전, 나는 사수 형님과 함께 단 둘이 회사를 꾸려나갔다. 우리는 아무런 기반도 없었다. 5천 원짜리 점심 먹을 돈이 없어 전전긍긍할 때였다.
그나마 형님이 나를 만나기 전에 이어왔던 인맥이 있던 게 우리 재산의 전부였다. 천만다행이지 정말
우리는 우여곡절 끝에 POP 제작 프로젝트를 수주하게 되었다. 하지만 문제는 제작할 공간이 없었다. 그래서 형님이 아는 분의 실크 스크린 인쇄 공장 한 구석에 작업 공간을 구해 거의 빌붙듯이 작업을 시작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리는 참 치열하게 살았다. 한정된 시간과 계속 변하는 POP 디자인 스펙에 야근을 밥먹듯이 했다. 그래도 우리는 뭔가를 하고 있고, 성과를 내고 있다는 생각에 나는 장밋빛 미래를 꿈꾸었다.
그렇게 거의 2년 정도를 지냈다. 그때 사수 형님은 물론, 공간을 빌려준 사장님과 사모님, 그리고 거기서 일하는 실장님과 가끔 일손이 부족할 때 도우러 왔던 사장님의 고등학생 딸과 중학생 아들이 있었다.
긴급호출을 받고 공장에 갔다
이제는 POP 관련 일을 하지 않는다. 그 일은 형님만 하고 있다. 그런데 요즘 하는 POP 프로젝트 일정에 문제가 생겼다. 그래서 형님은 나를 지난주 토요일에 긴급 호출했다.
실크 인쇄를 해야 하는 물건에 문제가 생겨서 급하게 다시 CNC 작업을 해야 했다. 그런데 실크 인쇄 사장님이 어머님 부고를 당하게 되었다. 그래서 실크 인쇄 작업을 긴급하게 해야 하는데 실장님 한 분만 있어서 어쩔 수 없이 내가 투입되어 일을 도와야 한다고 했다.
일요일 아침, 테니스를 치고 실장님을 픽업해 공장으로 이동했다.
사실 나는 옛날 기억을 잘 하지 못한다. 실크 인쇄 사장님은 그 후로도 가끔 뵈어서 잘 기억하고 있지만, 나머지 분들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런데 사람이 참 신기한 게 실장님의 얼굴을 보는 순간 그때 상황이 기억이 선명하게 났다. 처음엔 마스크를 쓰고 있었기 때문에 서로를 잘 알아보지 못했다. 그래서 차를 타고 가는 중에 ‘아이스 브레이킹 대화’를 나누며 이동했다.
옛날에는 실크 인쇄 공장에 자주 갔었고, 일도 많이 했었다면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그런데 실장님이 갑자기 이런 말씀을 하셨다.
“그 때 행곤씨가 일을 참 잘했는데~”
엥!? 난데? 제가 행곤이라고 말하자 그제서야 서로의 정체를 명확하게 깨닫게 되었다. ‘그래~ 내가 좀 열심히, 치열하게 일 했었지.’ 그걸 인정 받은 것 같아서 기분이 좋았다.
실장님에게 그때 그 사람들의 근황을 들었다. 중학생이었던 아들은 군 제대 후 사장님 공장을 이어받는 중이라고 했다. 고등학생이었던 딸은 파티시에가 되었다고 했다.
세상에… 내가 이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단 말이야?!
오늘의 미션은 물건을 픽업하고 옮기는 것
오늘 미션은 실크 스크린 인쇄 공장에 가서 우리 물건을 픽업해서 사무실로 가져다 달라는 것이었다. 차가 막힐 것을 고려해 일찍 출발했다. 아침 8시 20분에 도착해 9시까지 대기하다 공장에 들어갔다.
처음 보는 청년인데 마스크 위 눈매만 봐도 누군지 알겠더라. 사장님 아들이었다. 이때 느낀 감정이 격세지감이라고 할 수 있겠지.
차에 짐을 싣으면서 오랜만에 인사를 나눴다. 짐을 다 싣고 출발하기 전에 실크인쇄 사장님이 웃으면서 내게 이런 말을 건넸다.
“우리 아들이 아까 ‘행곤이 아저씨 왔어요’라고 하던데?”
세상에 내 이름을 기억하고 있었다니! 이름도, 얼굴도 가물가물했던 내가 부끄러웠다.
운전하는 중에 나를 돌아보게 되었다
물건을 싣고 1시간 정도 사무실을 향해 운전했다. 운전 중에 반가운 마음으로 옛날을 추억했다. 그리고 약간의 허망함 역시 느꼈다. 그렇게 온갖 생각에 서서히 젖어들어갔다.
나는 열심히 살았다. 하지만 내 경제적 상태는 변한 게 없었다. 사고와 마인드는 조금 변했다. 그렇지만 13년 전에 나를 알던 사람들이 지금의 나를 본다면 어떻게 느낄까?
변한 것 하나 없이 오랜만에 보는 그냥 그런 사람이지 않을까… 살은 엄청 쪘고, 얼굴에 세월이 느껴지는 정도의 변화를 느끼겠지. 이런 생각이 드니 괴로워졌다. 27살의 나는 성과를 내고 잘 사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43세의 나는 이뤄놓은 것 없이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절벽 위에 서 있는 중년이 되었다.
물론 지금이라도 아등바등하면서 커리어를 써먹으려 해보기도 하고, 재테크도 해보려고 노력 중이긴 하다.
그래도 그 성과가 언제쯤 올지 몰라서 막막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더라. 이런 생각을 하는 걸 보니 역시 나는 성장하지 못하는 인간인 것 같다. 시간을 그냥 되는대로 흘러 보내는 게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되새기는 일을 겪었는데 또 급한 마음을 먹게 된다.
오늘의 경험을 놓지 말자. 당장 성과가 없더라도 목표를 가지고 계속해 나가자. 커리어면에서는 자존감을 스스로 느낄 수 있도록 44세까지 월수입 3천만 원 , 재테크면에서는 경제적 자유를 얻기 위해 48세까지 순자산 10억 성과를 내자.